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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리 준본당의 설립과 서초리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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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ta
댓글 0건 조회 1,104회 작성일 20-06-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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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 서초동 지역의 복음 전래

 

3. 잠실리 준본당의 설립과 서초리 공소


1) 서초리 강당 건립


일제 말기에서 해방 후까지 서초리 공소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미 공소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처음과 같이 서초리와 양재리의 신자들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혹은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 훗날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 말기 이들 공소의 모임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고 한다.


「신부님의 방문 미사나 판공 예절은 매주 마다 한 것이 아니고 봄·여름·가을 두 차례 했는데, 서초리·방배리 지역에서는 김의석(벨라도) 회장 댁에서, 양재리·역말에서는 김정일(요한:양재리 공소의 초대 회장) 회장 댁에서 가졌습니다. 

거주지 가까운 지역으로 신자들이 모인 것이지요.


이 때 오기선 요셉 신부님께서 공소에 오시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신자들끼리 혈연 관계로 맺어져 있었고, 모임의

주축을 이루었던 분들은 본인(증언자 이직술 마롤로)의 장인인 정석환(안토니오) 회장과 그의 딸 정숙자(아가다), 정석환의 매부이자 아가다의 고모부인 김의석(벨라도) 회장, 그리고 김의석·정석환 회장의 친구인 김정일 회장 등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서 말하는 오기선 요셉 신부는 1936년 이후 약현 본당의 보좌 신부로 있다가 그 해 백동 본당의 제3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당시 서초리·양재리 지역은 약현 본당의 소속이었지만, 오기선 신부가 약현 본당 시절부터 이곳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벽동 본당으로 전임된 뒤에도 이곳으로 판공 성사를 주러 다녔던 것 같다.


공소 설립 이후 약 45년 여를 지내면서 서초리 공소는 이처럼 안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다만 그 신자들에게는 한 가지 염원이 있었으니, 그것은 공소 강당의 건립이었다. 그러나 서초리 공소에 다니는 신자들이 많지 않았으므로 강당을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이에 김의석 회장은 1947년에 이르러 명달리에 있던 자신의 집 텃밭을 부지로 기증하고 또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여 마침내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과정에 대해 신자들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서초리 공소의 강당(명달리 소재)은 김의석 회장이 동냥을 하다시피 하는 노력 속에서 1947년경에 건립한 것인데, 6·25사변 후까지 사용하였습니다. 건평은 한 50평정도 되었지요. 당시만 해도 신자들이 살기에 급급한 터라 강당을 건립하는 데 신자들이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김 회장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공소 강당은 지금의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위의 향나무 있는 곳에서 왼쪽 큰길가에 있던 김 회장님 자택 마당 끝에 위치해 있었고, 1960년대 양재동 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공소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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