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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서초동성당 | 2018.04.06 08:14 | 조회 87

토요일 파스카 성야                                      로마6,3-11;마르16,1-7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4,18)

 

   , 참으로 복된 밤, 하늘이 땅이 만나고 하느님이 사람과 결합된 밤!

주님, 기도하오니 주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촛불이 밤의 어두

움을 물리치며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소서.”

   오늘 빛의 예식, 사제가 부활초를 높이 들어올리면서 그리스도, 우리

의 빛라고 세번 선창할 때마다, 우리는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면

서 부활초에서 불에 당겨 우리 각자의 초에 붙이자, 어두웠던 성전이 서서히

환해지질 않았습니까?

   이렇듯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빛이 되시어 죄와 죽음의 어둠 속에 갇

혀있는 이 세상을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일본 나오시마, ‘혼무라동네에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나

미테라라는 작은 집이 있는데, 그 집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 ‘달의 뒤편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관람객 20여명이 그 집 앞에 모이면, 안내원이

관람객들을 한 줄로 세우고 그 집 안으로 들어 보냅니다. 집 안에 들어서

자 마자 바로 앞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같은 어둠을 만나게 되는데,

그래서 벽면을 손으로 더듬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 앉습니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 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4분 침

묵 속에서 앉아있자 어슴푸레 주변이 눈에 들어 오고, 정면에 스크린 같은

면이 있는 것을 서서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안내원의 안내로 일어나 그 스크린 같은 면 앞으로 걸어가 보

, 그곳에 빛이 충만한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무덤처럼 캄

캄한 어둠 속에 충만한 빛이 공존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왔습니다.

   그 순간 요한 복음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요한1,9-10).

   이렇게 예수님께서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지만”(요한12,46),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요한3,19-21).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요한8,12참조). 그리스도는 부활 초처럼 당신

의 몸을 녹여 죽음을 이긴 빛으로서 이 세상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

여 사셨습니다. “우리 인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강생에서부터우리의

죄 때문에”(1코린 15,3) 돌아가시기까지, 그리고우리를 의롭게 하시려

”(로마 4,25) 부활하시기까지 당신 일생을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는늘 살아 계시어 하느님

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빌어 주시고”(히브 7,25), “하느님 앞에서 우

리를 변호해 주시고 계십니다”(1요한 2,1).

   이렇게 일상 생활 속에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그분과

함께 생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목적이고 이

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슬픔에 빠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녀 옆에

서 계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녀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생각하였

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역시 절망에 빠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들과 동행하셨지만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들은 예수님을 낯선 나그네

여기질 않았습니까?

   유다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불현듯 예수님께서 나

타나셨을 때, 그들은 무섭고 두려워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취급하였고,

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들은 부

활하신 예수님을 낚시꾼쯤으로 여기질 않았습니까?

   ,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한결같이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 예수님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따라서

엇을 보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느꼈는가,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진 않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강원도 오크 밸리 리조트 안에 ‘Museum SAN’이 있는데, 그 뮤지움에

제임스 터넬의 또 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저의 설명에 따라

한번 감상해 보시겠습니까?

   먼저, 이 제단 앞에 아주 커다란 하얀 벽면 하나를 그려놓고, 그 벽면을

바라다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그 벽면 앞에 커다란 자형의 7개 계

단이 놓여 있고, 그 계단 위에 LED TV 화면처럼 거의 평면으로 보이는 큰

파란색의 사각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 그 큰 사각형에 가까이 다가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각형을 만져 보세요. 그 사각형이 뭐죠?

   실제로 그 작품의 사각형은 놀랍게도 그 안으로 들어갈 있는, 빛이 충

만한 하나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착시(錯視)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입체적인 공간을 평면으로

본 것처럼 눈으로 본다는 것, 얼마나 객관성이 결여된 자기 관점입니까?

따라서 ‘Seeing is believing’, 뭐든지 직접 눈으로 보아야 믿고자 하지만,

본다는 것이 어떨 땐 얼마나 자기 아집이고 독선입니까?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리아야!’라고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해설해 주시고, 빵을 들어 축복하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

.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인사를 하시면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셨을 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기뻐하였

,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많은 고

기를 잡고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해주심으로써 제자들은

예수님을 비로소 알아 뵙질 않았습니까? 따라서 나의 관점이 아니라, ‘계시

의 빛’(루카2,32), 신앙의 관점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자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만져보고 그분의 옆

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서 믿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

씀하질 않으셨습니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

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천문대에 가서 망원경으로 천체를 볼 때, 내가 보는 그 천체가 우주의

%나 될까요?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행성들이 얼마나 더 많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진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

이는 것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진 않는 것들에 대

해서는 관심 밖에 있질 않습니까?

   이렇게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고자하는 열망과 희

, 이것이 바로 신앙의 관점이, ‘계시의 빛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가량이 되어,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모태도 죽은 것이라 여기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

게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말아질 것

이다.’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

4,18-19 참조).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8,24-25).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십니다”(콜로1,27참조).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히브6,19).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

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1베드1,13).

   그러면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하느님을 어렴풋이 보고 있지만 부활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

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부활 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

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13,12참조).

   형제 자매 여러분, 눈을 잠시 감아 보시겠습니까? 뭐가 보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그러나 어둠 밖에 빛이 존재하고 있질 않습니까? 눈을 뜨십

시오. 이렇게 눈을 뜨기만 하면 바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요한12,

46). 따라서 빛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나 뵐 수 있도록

예리코의 눈먼 두 사람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마태20,33).  (2018.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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