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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어려울 때'

서초동성당 | 2018.04.16 07:58 | 조회 97

부활 제3주일           사도3,13-15.17-19;1요한2,1-5;루카24,35-48

 

                                         용서가 어려울 때

 

   17세기에 한 포르투갈 청년이 신앙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양치기이자 군인이던 그는 어느 날, 성대한 종교 축제에서 아빌라의 요한

이 하는 연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연설에 감화된 청년은 군중 한가운데서

가슴을 치며 울부짖더니 목청이 터져라 자비를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몇 달이 지나도 계속됐습니다. 용서해 주십사 외치며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그 청년은 점차 동네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결국

미친 사람으로 몰려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빌라의 요한은 이 소식을 듣고 청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만하면 충분히 자신한테 벌을 줬으니 지금부터는 자신과 이웃들에게 도움

이 되는 긍정적인 뭔가에 힘을 쏟으라고 말해줬습니다. 그 청년은 이 충고

를 받아들였고, 남은 일생 동안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

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천주의 성 요한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참회란 후회하면서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믿고 바라면서 죄에

서 멀어지는 것이며,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 죄가 입힌 상처를 가슴 아프게 후회

할 수는 있습니다. 후회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죄를 통해서 구원받

음을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우들은 고백성사를 통해서 이미 용서받은 죄를 반복해서

다시 고백합니다. 분명히 그 죄가 아직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일 것

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불필요하게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

잡혀 있거나, 불필요한 고행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리는 자신을 질책하고 벌합니까? 우리 자신을 용서합시다. 그리고 나서 다

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용서해야 할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

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왜 용서해야 합니까?

   R. 스콧 허드는 용서가 어려울 때’(바오로딸)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과 고

통을 준 당사자를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성경에 기록

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

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

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하고자 가족과 이웃의 잘못

을 용서할 때, 우리는 미움과 증오, 복수와 무자비가 가득한 이 세상에 하

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을 벌하러 오지 않고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착한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듯이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고 치유

해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까? 오늘 제2독서의 말씀대로,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당신에게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조롱하고 모독하며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지금도 이렇

게 간청하고 계시질 않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지난 주일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 오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도망치거나, 다락방

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제자들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죄를 질타하시기는 커녕 그들을 용

서해주시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질 않으셨습니까?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여쭌 적

이 있질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 대답하셨습니까? “일곱 번이 아

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가 여러 번 반복해서 잘못을 하더라도 여러 번

다 용서해주어야 할 뿐 아니라, 완전하게 용서해줄 때까지 계속 새로이 반

복해서 용서해주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용서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거슬러서

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 의지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족과 이웃을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서 기도해야 합니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잘 대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

기를 청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

.

   주님, 당신께서 저를 용서하셨듯이 제가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

도하여라”(마태5,44). 예수님의 말씀대로, 또한 나에게 잘못한 가족과 이웃

을 위해서 열심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

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이렇게 고백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죄로 인한 상처도 치

유 받으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얻고 있질 않

습니까?

   따라서 고백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가 주는 기쁨과 평화를 체험해

야 하겠습니다. 그토록 분에 넘치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서 어떻게 가족

과 이웃을 용서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체성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성사

중에 그 어떤 성사도 더 큰 치유의 힘을 갖지 못합니다. 성체를 통해 죄를

없어지고 선은 커지며, 영혼은 영적 선물로 풍부해집니다.”

   용서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특히 그 용서가 하기 어려울 때, 가능한

자주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

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받아 모시면, 예수님은 치유의 은총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십니다. 영성체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에게 가한 영혼의 상처를 치유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영혼의 상처도 치유 받고 있질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용서를 나누기 위해 이 세상으로 파

견 되질 않습니까?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따라서 오늘

내일 우리가 가족과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줌으로써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 이 기쁜 소식을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01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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