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래에 관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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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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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초동 지역의 복음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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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음 전래에 관한 기록들 -
서초동과 그 인근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지금의 서초동 지역에도 이미 박해 시대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
첫째로, 1866년 병인박해 때 과천과 이웃의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여러 명 체포되거나 순교한 기록이 나타나며, '묘론리 공소'(卯論理 公所, 지금의 성남시 낙생면 운중동), '둔토리 공소'(지금의 성남시 낙생면 금토동) 등 박해 시대의 공소들이 서초동 지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다. -
둘째로, '숫골 교우촌(지금의 강남구 청담동 지역)이 이미 박해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는 1894년 3월 23일, 당시 갓등이 본당(지금의 수원교구 왕림본당)의 제2대 주임 신부였던 알릭스(Alix)신부가 제8대 조선교구장이던 뮈텔(Mutel) 주교에게 보고한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숫골은 박해 전부터 있던 마을로 이제(1894년 초) 완전히 재건되었다"고 한 점에서 지금의 강남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이 박해 전 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셋째로, 이보다 확실히 서초동 지역의 복음 전래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박해가 끝나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다시 입국하여 각 처에 공소를 설립할 때, 지금의 강남 일대에서 최초로 설립한 공소가 바로 "서리풀 공소"였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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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공소는 1902년에 설립되는데, 이 사실은 일찍부터 이곳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있었고, 박해 후 그 신앙 공동체가 재건되면서 공소로 승격되었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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