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자리의 이전과 공소의 성장 - 유치원과 부동산 사무실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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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
-3. 복음 자리의 이전과 공소의 성장
1) 유치원과 부동산 사무실로 이전
공소 설립 후 이곳 신자들은 이웃에 천주교 신앙을 전하는 한편 본당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나름대로 공소 체제를 갖추면서 성장을 도모해 갔다. 또 본당의 박병윤 신부는 신자 가정을 순방하며 축성을 해주기도 하고, 자주 공소 신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가지면서 신앙적으로나 일상 생활 면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그 결과 인근 지역에서 새로 나와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늘게 되면서 극동 공소의 교세는 점차 증가하였다.
교세가 확대되면서 신자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미사를 봉헌하는 장소가 비좁은 탓에 강당으로 꾸밀 장소를 마련해야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러한 장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 안되어 미술 학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함에 따라 새 공소집을 구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 신자 대표들은 회합을 갖고 월세로 공소집을 얻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1977년 10월 1일에는 은하상가 안에 자리잡고 있던 한 "유치원"을 주일에만 사용하기로 하고 월세 3만원 가량에 얻게 되었다. 이로써 유치원은 두 번째 공소집이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공소집도 오래지 않아 이전해야만 했다.
이번에 옮겨간 곳은 1년 전 서초동 공동체가 이루어졌던 이진락(요아킴)의 "강남 부동산 사무실"로 이것이 세 번째 공소집 이었다. 본래 이진락 형제는 예비신자였는데, 이 무렵에 영세를 받고 박병윤 신부에 의해 공소 부회장에 임명되었다. 신자들이 이 세 번째 공소집에서 미사를 봉헌한 것은 1978년 1월 10일 이었다. 주일이면 이곳에서 공소 미사를 드려야 했고, 평일의 회합도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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