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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역사

서초동 공동체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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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ta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0-06-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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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2) 서초동 공동체의 형성


서리풀 공소 설립 후 70여 년가 복음의 자취가 끊이지 않던 서초동 지역에 새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76년 후반이었다.


서초동 지역은 그 전해인 1975년 10월 1일,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면서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온 지역 개발이 더욱 활성화되어 갔지만, 1976년 초까지도 대부분 지역은 밭과 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농촌 마을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었고, 교대 인근에만 작은 규모의 주택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 지금의 성당 자리에서부터 옛 성당 일대까지는 배밭이었으며, 고속도로 안팎으로 택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극동 아파트"가 완공되면서 신자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서초동 남서쪽 지역의 옛 신자들은 대부분 양재동 본당에 다니고 있었고, 북쪽 일부 지역 신자들은 반포 본당에 다니고 있었다. 또 극동 아파트에 새로 입주하기 시작한 신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양재동 본당, 논현동 본당, 그리고 반포 본당으로 나가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실정이었다. 당시 극동 아파트의 사목 관할 구역은 반포 본당으로 되어 있었다.


극동 아파트의 신자들은 1976년 가을까지도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신자인 것을 확인하고 점차 친밀해지게 되었다. 그 결과 6,7세대의 신자들이 함께 의논하여 이재호(바오로)를 대표로 선출한 다음, 12월 초에는 양재동 본당의 제7대 본당 주임으로 재임하던 이용선 베드로 신부를 방문하고 극동 아파트 지역의 신자들을 위해 방문 미사를 드려줄 것을 청하게 되었다.


이에 이 신부는 신자들의 자발적인 방문을 반갑게 생각하고 그 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1976년 12월 21일(토요일)에는 양재동 본당의 대표 신자들과 함께 극동 아파트 방문하고 이곳에서 첫 미사를 집전해 주었다. 이날 첫 미사를 드린 장소는 '이진락(요아킴)형제의 부동산 사무실'이었으며, 여기에 참석한 신자수는 6~7세대에 17,8명 정도였다. 이로써 새로 '서초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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