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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동 본당과 서초동 공소 1) 양재동 본당의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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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ta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0-06-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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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 서초동 지역의 복음 전래

 

4. 양재동 본당과 서초동 공소
1) 양재동 본당의 설립


서초리 공소의 쇠퇴는 신자수의 감소에 있었지만,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양재동 본당의 설립이었다. 

물론 서초동 신자들은 강당이 폐쇄된 이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양재동 신자들과 함께 성당 건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양재동 성당을 건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게 된 것은 잠실리 본당의 역할이 축소된 이후였다. 이에 양재동·서초동·반포동·청담동의 신자들은 이우철 신부와 협의하여 1964년에는 양재동 23번지에 3,970평을 매입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에 이우철 신부는 서초동과 양재동에 3필지의 땅을 매입했었지만, 위치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처분하고 다시 새 부지를 매입한 것이었다.


부지 매입 후 신자들이 성당 건립에 노력하면서, 그리고 강남 지역의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서울교구에서는 이 지역에 본당을 설립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1965년 7월 20일에는 마침내 "양재동 본당"의 서립을 발표하였다. 당시 그 초대 본당 신부로 임명된 사람은 이용선 베드로 신부였다.


서초동 신자들은 이때부터 양재동 본당 소속이 되었다. 사실 그들은 일찍부터 양재동 신자들과는 함께 공소 예절에 참여하였고, 함께 잠실리 본당에 다녔으므로 양재동 본당 설립 이후에는 지역 구분 없이 한 마음으로 성당 건립에 노력하였다. 특히 서초동의 김의석 회장은 공소 시절과 마찬가지로 본당 설립 이후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므로 초창기 양재동 본당의 신자들이면 누구나 "김의석 회장은 신심 깊고 교회 일에도 언제나 앞장서는 열심한 신자였으며, 외교인들 까지도 그분이 나타나면 '저기 성인(聖人)이 오신다'고 할 정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2) 성당 건립 운동


양재동 본당의 설립 초기에 서초동 지역의 신자수는 15~20세대에 40~50명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본당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이 무렵 신자들 가운데서 주로 활동하던 사람은 김의석 회장과 이직술(마롤로)씨 정도였다.


양재동 본당의 신자들은 1966년 9월 8일에 첫 성당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강남대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성전을 철거해야만 했으며, 게다가 1973년 11월 19일 "청담동 본당"이 분할되고, 1976년 5월 25일 "반포 본당"이 분할되면서 새 성당 건립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본당 신자들은 1973년 3월에 새 성당 기공식을 거행한 뒤 2년 만인 1975년 12월에 1차 축성식을 거행하고, 그로부터 다시 2년 만인 1977년 10월에 이를 완공하여 2차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양재동 본당에서 새 성전 건립에 노력하던 1976년 말, 서초동의 다른 한 쪽에서는 공동체 설립의 움직임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강남 지역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지금의 서초동 극동 아파트 지역에 입주가 시작되고, 이곳으로 신자들이 이주한 결과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표면화되었으며, 마침내는 서초동 지역의 복음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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